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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
기자말
"힘든 일을 하는 그들의 혼이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렇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 중2025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우리는 성별 임금 차이 없는 평등 일터, 비정규직 차별 없는 평등 일터, 성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113년 전 미국 메사추세츠 주 로렌스지방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처럼.공공운수노조는 <평등으로 다시 만난 아파트전세담보 세계: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 기획연재를 통해 성차별적인 복무규율(메이크업, 유니폼, 구두 등)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 초단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 남초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노동자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탄핵 정국에서 광장으로 나온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개인회생신청자격조회
우리도 노동자다
"대학원생도 노조가 있어요?"
대학원생노조 활동을 한다고 하면 따라오는 흔한 질문이다. 노조가 출범한 지 햇수로 8년이지만, 여전히 '대학원생=노동자'라는 공식은 우리 사회에 낯설다. 생활 저축은행인터넷대출 을 비관한 대학원생의 자살 소식이나 대학원 내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대자보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학원생이 겪는 불합리한 대우를 노동권 침해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부족하다.
나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여성 대학원생이다. 랩실에 출퇴근하는 이공계열 대학원생들조차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출퇴근' 개념이 없는 인문 유한책임대출 계열 학생은 오죽할까. 여성 대학원생들이 부차적으로 수행하는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겹겹이 교차하는 차별 속에 있다.
안전하지 않은 공간
나는 소위 '메갈리아' 세대다. 메갈리아의 등장과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겪으면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경험도 식견도 부족하던 대학생 시절, 나의 세상 롯데인터넷 에서 대학은 큰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는 이 공간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부를 졸업하고 입학한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 중 절반은 여학생인데, 교수님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공부를 계속해도 교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감생심 품지 못했다.
석사 과정 중에는 동료 대학원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일상적인 성차별 발언에 무뎌져야 했다. 여학생끼리는 교수의 남학생 편애와 같은 자신들이 겪은 성차별 경험을 공유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드러내서 말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직접적인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사소해 보이고, '감정적'으로 보였다.
성평등 없이 민주노조 없다
대학원생노조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출퇴근도, 월급 개념도 없는 내가 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에 가입을 미뤄왔다. 조교가 되고 나서야 노조에 가입할 결심이 섰다. 가입 후에는 성평등위원회에 들어갔다. 페미니스트가 노조에 가입했으면 성평위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노조에서 성평위는 오랜 휴지기를 가졌다고 했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왜 성평위가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의 지향점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성평등 없이는 우리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활동 기반을 다지기 위해 내부 규정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회의를 격주로 진행하면서 공부하고 토론했다. 개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즘,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성평위 활동은 이대로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12월 3일 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 1월 11일 지부 신년회에서 신규 조합원을 대상으로 성평위 활동을 소개하는 강수연 성평등위원장. 최근 탄핵 정국에서 100여 명의 신규 조합원이 가입했다.
ⓒ 강수연
광장의 페미니스트, 노동자, 대학원생
사태는 급변했다. 성평위는 계엄 직후 "윤석열 퇴진! 페미니스트 투쟁선포"에 연명하고 연대체에 참여했다. 우리는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발언하고, 집회에서 철야를 하고, 깃발을 흔들었다. "투쟁!"을 우렁차게 외쳤다. 광장에서 나는 스스로를 "대학원생노조 성평등위원장"으로 소개했다. 희미했던 노동자로서의 자기 확신이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광장에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연단에 올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곳엔 생각보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있었다. 남태령에서도 한강진에서도 대학원생이라고 밝힌 이들을 여러 명 보았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노조 가입하실래요?"하고 권유도 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근데 저는 인문계여서 가입해도 될지 모르겠어요"였다.
▲ 지난 2월 1일 토요일 집회에 참석한 지부 깃발. 지부는 매주 토요일 집회와 각종 연대 단위에 참여하고 있다.
ⓒ 강수연
그 대답을 듣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절감했다. 사무치게 이해가 갔다. 나도 똑같은 의문을 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집에서, 길거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연락을 받으며,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너에게 도움이 된다"는 설득에 정당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수행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노동'이 아니라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교수의 성차별적인 농담에도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 교수가 맡긴 자료들을 스캔하고, 교수가 마신 커피잔을 설거지 하는 이 모든 행위가 '노동'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는 놀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취미로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무엇인가
'윤석열 OUT 성차별 OUT 페미니스트들'이라는 연대체에서는 한달 여간 '페미니스트 시국 발언대'를 운영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학교에 소속된 나로서는 학내 페미니스트 투쟁에 관심이 기울었다. 학교에서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실질적인 위협을 겪는다. 대학원생이나 강사도 예외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여성이기에, 페미니스트이기에 학교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전히 페미니즘을 외치는가? 대학원생노조에 왜 '성평등위원회'가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바라는가?
▲ 윤석열 탄핵을 위한 집회 행진 중 대학원생노조 응원봉을 든 조합원. 조합원들의 요청에 따라 기획한 응원봉은 약 150개가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 강수연
출범 직후 조합원들에게 밝힌 인사에서 나는 성평위가 대학원생이 속한 조직 안팎에서 "누군가의 성 정체성과 성적 관계, 성지향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했다. 나는 인권과 노동, 성평등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을 바란다. 대학원생이 '노예'라는 말로 희화화되지 않는 세상, 우리의 행위가 '연구노동'으로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 학문의 공공성과 지식생산의 사회적 가치가 치열하게 논의되는 세상을 바란다. 지금도 광장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했던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들이 자신의 생존을 이야기하며 끈질긴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반민주적인 폭거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집한 이번 광장에서, 나는 다양한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외쳐왔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와 여성, 노동자, 사회적 소수자 없이는 새로운 세상도 없다는 비장한 다짐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 나는 내가 속한 자리에서 더 열심히 나의 위치와 존재를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저들과 함께 투쟁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노동하는 대학원생인 내가 이 자리에 있다.
덧붙이는 글
기자말
"힘든 일을 하는 그들의 혼이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렇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 중2025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우리는 성별 임금 차이 없는 평등 일터, 비정규직 차별 없는 평등 일터, 성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113년 전 미국 메사추세츠 주 로렌스지방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처럼.공공운수노조는 <평등으로 다시 만난 아파트전세담보 세계: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 기획연재를 통해 성차별적인 복무규율(메이크업, 유니폼, 구두 등)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 초단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 남초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노동자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탄핵 정국에서 광장으로 나온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개인회생신청자격조회
우리도 노동자다
"대학원생도 노조가 있어요?"
대학원생노조 활동을 한다고 하면 따라오는 흔한 질문이다. 노조가 출범한 지 햇수로 8년이지만, 여전히 '대학원생=노동자'라는 공식은 우리 사회에 낯설다. 생활 저축은행인터넷대출 을 비관한 대학원생의 자살 소식이나 대학원 내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대자보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학원생이 겪는 불합리한 대우를 노동권 침해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부족하다.
나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여성 대학원생이다. 랩실에 출퇴근하는 이공계열 대학원생들조차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출퇴근' 개념이 없는 인문 유한책임대출 계열 학생은 오죽할까. 여성 대학원생들이 부차적으로 수행하는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겹겹이 교차하는 차별 속에 있다.
안전하지 않은 공간
나는 소위 '메갈리아' 세대다. 메갈리아의 등장과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겪으면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경험도 식견도 부족하던 대학생 시절, 나의 세상 롯데인터넷 에서 대학은 큰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는 이 공간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부를 졸업하고 입학한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 중 절반은 여학생인데, 교수님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공부를 계속해도 교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감생심 품지 못했다.
석사 과정 중에는 동료 대학원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일상적인 성차별 발언에 무뎌져야 했다. 여학생끼리는 교수의 남학생 편애와 같은 자신들이 겪은 성차별 경험을 공유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드러내서 말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직접적인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사소해 보이고, '감정적'으로 보였다.
성평등 없이 민주노조 없다
대학원생노조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출퇴근도, 월급 개념도 없는 내가 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에 가입을 미뤄왔다. 조교가 되고 나서야 노조에 가입할 결심이 섰다. 가입 후에는 성평등위원회에 들어갔다. 페미니스트가 노조에 가입했으면 성평위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노조에서 성평위는 오랜 휴지기를 가졌다고 했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왜 성평위가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의 지향점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성평등 없이는 우리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활동 기반을 다지기 위해 내부 규정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회의를 격주로 진행하면서 공부하고 토론했다. 개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즘,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성평위 활동은 이대로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12월 3일 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 1월 11일 지부 신년회에서 신규 조합원을 대상으로 성평위 활동을 소개하는 강수연 성평등위원장. 최근 탄핵 정국에서 100여 명의 신규 조합원이 가입했다.
ⓒ 강수연
광장의 페미니스트, 노동자, 대학원생
사태는 급변했다. 성평위는 계엄 직후 "윤석열 퇴진! 페미니스트 투쟁선포"에 연명하고 연대체에 참여했다. 우리는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발언하고, 집회에서 철야를 하고, 깃발을 흔들었다. "투쟁!"을 우렁차게 외쳤다. 광장에서 나는 스스로를 "대학원생노조 성평등위원장"으로 소개했다. 희미했던 노동자로서의 자기 확신이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광장에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연단에 올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곳엔 생각보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있었다. 남태령에서도 한강진에서도 대학원생이라고 밝힌 이들을 여러 명 보았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노조 가입하실래요?"하고 권유도 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근데 저는 인문계여서 가입해도 될지 모르겠어요"였다.
▲ 지난 2월 1일 토요일 집회에 참석한 지부 깃발. 지부는 매주 토요일 집회와 각종 연대 단위에 참여하고 있다.
ⓒ 강수연
그 대답을 듣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절감했다. 사무치게 이해가 갔다. 나도 똑같은 의문을 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집에서, 길거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연락을 받으며,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너에게 도움이 된다"는 설득에 정당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수행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노동'이 아니라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교수의 성차별적인 농담에도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 교수가 맡긴 자료들을 스캔하고, 교수가 마신 커피잔을 설거지 하는 이 모든 행위가 '노동'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는 놀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취미로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무엇인가
'윤석열 OUT 성차별 OUT 페미니스트들'이라는 연대체에서는 한달 여간 '페미니스트 시국 발언대'를 운영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학교에 소속된 나로서는 학내 페미니스트 투쟁에 관심이 기울었다. 학교에서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실질적인 위협을 겪는다. 대학원생이나 강사도 예외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여성이기에, 페미니스트이기에 학교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전히 페미니즘을 외치는가? 대학원생노조에 왜 '성평등위원회'가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바라는가?
▲ 윤석열 탄핵을 위한 집회 행진 중 대학원생노조 응원봉을 든 조합원. 조합원들의 요청에 따라 기획한 응원봉은 약 150개가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 강수연
출범 직후 조합원들에게 밝힌 인사에서 나는 성평위가 대학원생이 속한 조직 안팎에서 "누군가의 성 정체성과 성적 관계, 성지향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했다. 나는 인권과 노동, 성평등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을 바란다. 대학원생이 '노예'라는 말로 희화화되지 않는 세상, 우리의 행위가 '연구노동'으로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 학문의 공공성과 지식생산의 사회적 가치가 치열하게 논의되는 세상을 바란다. 지금도 광장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했던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들이 자신의 생존을 이야기하며 끈질긴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반민주적인 폭거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집한 이번 광장에서, 나는 다양한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외쳐왔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와 여성, 노동자, 사회적 소수자 없이는 새로운 세상도 없다는 비장한 다짐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 나는 내가 속한 자리에서 더 열심히 나의 위치와 존재를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저들과 함께 투쟁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노동하는 대학원생인 내가 이 자리에 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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